프날로그

다크 패턴: 더 이상 잇지 말아야 할 깜깜이 디자인

제가 컴퓨터를 열심히 사용하기 시작한 시절, 저는 브라우저 상단에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칙칙한 툴바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기본 기능인 줄 알았습니다.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프로그램 개발사와 제휴를 맺은 툴바 프로그램이 자동 설치되는지도 몰랐죠.

해당 툴바와 제휴를 맺은 프로그램 개발사는 '작은 선택 칸을 못 보고 지나치는 사용자가 많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 칸을 구석에 있도록, 또 기본적으로 선택되어있도록 설치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이죠. 저는 이 무렵을 많은 국민의 컴퓨터에 툴바 하나씩 설치되어있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사용자를 속여서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소프트웨어 서비스에서의 다크 패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고객을 속이는 다크 패턴

앞서 말씀드렸듯 사용자를 속여서 행동을 유도하는 디자인 패턴을 다크 패턴이라고 합니다. 사용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에 동의하고, 혹은 결제하죠. 집중하고 조심하면 피할 수 있지만, 애초에 눈을 부릅떠야만 이러한 속임수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해리 브링널'(testimonium.co)이라는 UX 디자이너가 대중화했습니다. 그는 사용자를 속이는 다크 패턴을 12가지로 분류하여 자신의 웹사이트(deceptive.design)에 게시했죠.

  1. 속임수 질문: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원치 않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제출 양식을 이용하는 경우

  2. 장바구니에 숨기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때, 선택 제품이 자동으로 체크되어 장바구니로 같이 담게 하는 경우

  3. 바퀴벌레 덫: 쉽게 상황에 빠지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설계하는 경우

  4. 개인정보 주커링: 실제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개인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경우

  5. 가격 비교 방해: 대용량 혹은 장기간 결제 상품의 단위 기준 당 가격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

  6. 시선 돌리기: 의도적으로 한 가지에 주의를 집중시켜 다른 것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경우

  7. 숨겨진 비용: 결제 과정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야 비로소 추가 비용을 보이게 하는 경우

  8. 미끼 놓고 바꾸기: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데 원치 않는 다른 일이 대신 발생하게 하는 경우

  9. 죄책감 주기: 거부하는 선택지에 죄책감을 주는 문구를 사용하는 경우

  10. 위장된 광고: 광고같지 않아 보이지만 광고인 경우

  11. 강제 지속: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난 후, 등록된 카드 정보로 즉시 연장 비용이 결제되는 경우

  12. 친구 스팸: 사용자의 동의로 SNS 접근 권한을 획득한 후, 사용자의 친구에게 자신의 보낸 척 하면서 스팸이 발송되는 경우

(추가: 2023.08.29. - 오랜만에 확인해보니 사이트가 수정되어 다크 패턴의 종류를 좀 더 세분화하고 각 패턴의 이름을 명확하게 바꾸어서 이 글과는 다른 목록을 가지게 되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같음을 알립니다.)

이러한 다크 패턴은 사용자에게 경제적인 손해를 끼칠 수도 있지만, 무형의 피해(원치 않는 개인정보 제공 등)를 끼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큰 해악이 됩니다. 정상적으로 사용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크 패턴은 사용자를 속인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모든 주어진 선택지는 사용자가 자의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용자를 속여서 선택지를 지나치게 한다던가, 혹은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다크 패턴에 속합니다. 사용자가 주의집중 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에게 침익적인 결과를 제공하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말이죠.

죽은 윤리의 사회

교묘하게 선택사항이 눌러져 있는 페이지 디자인, 장바구니에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추가 금액, 제때 기억해두었다가 해제하지 않으면 자동 결제되는 허울뿐인 무료 구독, 원치 않는 선택지는 잘 보이지 않게 숨겨놓는 디자인, 죄책감을 유발하는 문구, 기능으로 보이지만 눌러보면 광고인 디자인, 꼭 필요하지 않은 권한마저 거부하면 앱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 등...

현대적으로 진화한 다크 패턴은 우리 일상의 IT 서비스에 뿌리 깊게 박혀있습니다. 심지어는 국내/해외, 대기업/중소기업과 관계없이 모든 사업체가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MAMAA로 대표되는 페이스북(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알파벳) 또한 예외가 없다는 뜻이죠.

가히 죽은 윤리의 사회라고 불러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는 윤리적인 디자인이 비즈니스 수익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당하게 얻는 비즈니스 수익은 결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얻는 이득이 신뢰보다 더욱 가치 있나요?

악습의 대물림

문제는 이러한 악습이 10년 전에도 있었고, (변하지 않는다면) 10년 후에도 있을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회사는 여전히 사용자를 기망하고, 그들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속여서 취하게 할 것입니다.

심지어 다크패턴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게 잘 보고 설치했어야지' , '함부로 동의하니까 피해 봤지' 와 같은 반응이 인터넷에 있다는 점은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애초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면 신중히 봐야 선택할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이러한 악습을 끊기 위해 기업은 지금까지 큰 생각 없이 써왔던 다크 패턴을 찾아보고,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정말 악의를 가지고 '사용자를 속여야지'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디자인을 하는 기업은 없을 것입니다. 남들 다 하니까, 이 정도 가지고는 별 문제 없을테니까 다들 다크 패턴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명백한 악습입니다.

사회도 좀 더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이제는 다크 패턴에 '속는' 사람이 아닌, '속인' 기업에 화살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기능을 같은 수준으로 제공하는 두 서비스가 있다면 더 윤리적인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죠.

깜깜이 디자인, 그리고 부드러운 유도

사용자의 눈을 가려서 속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런 깜깜이 디자인은 분명 고쳐져야 합니다. 모든 유도 행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용자의 선택을 존중해주세요. 사용자가 자의로 선택 사항을 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유도를 하는 것이 기업과 고객 사이의 장기적인 신뢰 구축에도 더욱 좋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유도, 넛지(Nudge)는 윤리적으로 설계된 행동 유도 방식입니다. 시카고 대학교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공동으로 작성한 '넛지'(교보문고)라는 책에서 넛지를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넛지 또한 악용하면 다크패턴과 같아집니다. 상기 도서의 저자인 리처드 세일러는 자신이 기고한 사설(뉴욕 타임스)에서 아래와 같은 넛지 사용의 삼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글 작성일 기준 동일 IP에서 월 10회의 무료 읽기 횟수가 초과되었을 경우 유료 구독해야만 볼 수 있음을 참고하세요)

  1. 모든 넛지는 투명해야 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2. 넛지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가능한 한 쉬워야 하며,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3. 넛지로 유도된 행동이 그 사람들의 행복을 향상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크 패턴과 같이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속이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넛지의 목적이 정당하게 고지될 경우, 오히려 사람들이 그 행동에 쉽게 유도되는 효과도 있습니다("넛지: 파이널 에디션", 2022, 제15장, '넛지는 속임수인가').

기업은 고객을 속이면 안 되며, 유도의 목적을 정당히 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으로 큰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는 그동안 기업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뜻이 됩니다. 더욱 윤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다크 패턴의 종말을 위하여

다크 패턴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전 세계의 모든 서비스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먼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대중적인 서비스에선 종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주장해봅니다. 이러한 다크 패턴이 소비자의 반감을 사고, 그로 인해 이익이 떨어짐을 기업이 알게되며,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우선시하는 그런 사회가 온다면 다크 패턴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시민 사회와 소비자 담론

사회가 눈을 뜰 경우 다크 패턴은 금방 사라지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시민 사회가 나서서 더욱 윤리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려 노력하면, 기업은 스스로 다크 패턴을 없애고자 할 것입니다. 대신 좀 더 부드러운 유도를 통해서 사용자에게 이익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할 것입니다. 더욱 윤리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이렇게나 부당한 다크 패턴에 큰 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더욱 발전해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윤리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우리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더욱 윤리적인 서비스를 개발해야합니다. 고객을 속여서 얻는 수익은 단기적임을 알아야합니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선 장기적, 정기적으로 소비해주는 고객이 필요합니다. 게임 업계의 BM(Business Model)으로 정기 과금을 유도하는 '시즌 패스' 형식을 채택하는 것처럼 말이죠. 단순한 일회성 수익으로 그쳐선 안되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게 중요함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수익 모델 창출을 위한 열쇠는 신뢰입니다. 고객을 속이는 설계를 하지 말도록 합시다.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면 조용히 연장 결제되지 않게, 동의 화면에서 선택 사항에 대해 별도의 확인을 요하게, 광고면 광고라고 정확히 표기되어있게... 대신 고객의 이득과 손해를 적절히 표기하여 설득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신뢰를 얻는 것은 워낙 어렵지만, 적어도 이렇게 하면 신뢰를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득과 손해를 정직하게 설명해서 고객이 떨어져나가는 서비스라면 이는 설계가 잘못된 것입니다. 얻는 이익가지곤 손해를 감수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예를 들어, "이곳에 체크하시면 격주에 한 번씩 할인 행사에 대한 정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라는 설명에 고객이 모이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격주에 한 번씩 광고 정보가 수신된다는 점을 감수하고서는 할인 행사 정보을 얻으려 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광고 정보의 발송 빈도를 조절하거나, 할인 행사의 가치를 높이는 등 회사의 노력이 필요하죠. 그 노력이 무엇인지는 회사의 판단과 상품의 종류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추가로, 받은 동의의 해제는 더욱 간편해야합니다!)

다크 패턴의 종말

다크 패턴은 분명 사라져야 합니다. 해외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비교적 최근부터 이루어졌는데, 국내에서는 그 개념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컴퓨터 경험이 적은 사람들의 메일함에는 광고성 메일이 잔뜩입니다. 아마 어디선가 뉴스레터 수신 동의 버튼을 해제하지 않은 채로 회원가입을 한 것입니다.

시민 사회와 개발자 사이에 이러한 담론이 퍼져 다크 패턴이 사라진 인터넷 사회가 오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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